"오늘도 우리 아파트 놀이터는 주변 서민 빌라촌 아이들이 몰려와 마스크도 없이 뛰어놀고 있다. 아이들아 마스크 써"
최근 SNS에 올린 글로 글 하나가 논란이 되었습니다.마스크에 대한 염려야 누구나 공감하는 내용일테지만, '서민 빌라'라는 표현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과거에도 청년주택을 빈민아파트라고 부르거나 공사 소유의 다가구·다세대 반지하 커뮤니티 시설 이름을 ‘기생층’으로 브랜드화 한다는 발표에 모멸감을 불러일으키고 휴거를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 등은 모두 우리사회에서 아파트와 주택이 가지는 사회적 민감성과 더불어 우리가 가진 인식의 한계이기도 했습니다.
휴거’(휴먼시아, 즉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지은 임대주택에서 사는 거지), ‘빌거’(빌라에서 사는 거지), ‘임거’(임대아파트에서 사는 거지) ‘월거지’(월셋집에서 사는 거지), ‘전거지’(전셋집에서 사는 거지), ‘엘사’(LH, 즉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지은 주택에서 사는 사람)… 같은 아파트임에도 임대아파트라는 이유로 같은 브랜드를 써서도 입구를 같이 써서도 안되고 놀이터 이용을 금지하는 어른들.
끔찍한 차별주의적인 표현들이 아이들 입에서 자연스럽게 오르내리고. 아파트 브랜드가 아이들을 구분 짓고 줄 세우고 멸시의 대상이 되는 이상한 나라에서 그 이상함이 성공의 상징이자 경계를 가지는게 대다수의 꿈이 되어버린 이상한 집단 최면에 걸려 있습니다.
어떻게’ 사느냐보다 ‘어디에’ 사느냐가 더 중요해진 시대,
이름이 문제라면 이름을 없앨 수는 없을까요. 아니 경계를 없앨 수는 없을까요?
놀이터와 놀이터의 경계
우리들은 대부분 어릴 적부터 유치원이나 학원엘 갑니다. 남보다 더 잘 되길 바라는 마음도 없지 않겠지만 사회성을 길러야 한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회성은 놀이터에서도 길러집니다. ("성장 과정에서의 학습, 동기부여, 정서, 사회적 기술 등이 놀이의 한 측면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 영국 캠프리지대학교 부설 놀이발달연구소 데이비드 화이트브레드)
교육과 경쟁에 밀려 우리는 노는 것을 남들에게 뒤처지는 것이라 여기지만 놀이는 뇌 발달 뿐 아니라 정서와 인지 발달, 그리고 사회성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놀이터라는 공간에서 다양한 아이들과 논다는 것은 잘 배운다는 말과 일치합니다.
'무장애 놀이터'라는 푯말이 어색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최소한의 것도 보장 받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말, 생각을 넘어 행동하기 위해 표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파트 놀이터 곳곳에 ‘함께 노는 놀이터’, 다른 아파트와 이웃에게 열려있는 놀이터라는 표시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넌 어디 사는 앤"지 절대로 물어보지마시길!.
집 놀이터와 바깥 놀이터의 경계
점점 집으로 놀이기구가 밀려들어옵니다. 황사와 미세먼지 때문이었는데 이제는 감염병 때문에 점점 집이 놀이터가 되고 있습니다. 5세 아이를 키우다보면 아이에게 방방(트램플린)과 침대의 경계란 없습니다. 바깥 놀이가 어려워지는 만큼 집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여건을 마련하고 싶은게 부모 마음입니다.
방방을 좋아하는 우리 아이를 보며 가끔 큰 방방을 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지만 방방을 이고 살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다 생각해봅니다. 큰 방방을 사서 놀이터에 설치해두면 우리 아이는 아이대로 큰 방방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얻어서 좋고 이웃집 아이도 덩달아 즐거워 할텐데 하는 생각. 그런 생각은 모래 놀이에도 미치는데요. 모레 놀이를 하러 갈 때마다 한 가득 이고 지고 내려가서 잠깐 놀다가 주섬 주섬 또 장난감을 챙겨오느니 함께 쓰는 놀이 보관함이 놀이터마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요.(모레 놀이를 해보신 부모님은 공감하실꺼에요;;)
이미지 출처 : 머니투데이 "정부가 지원한 장난감이 비치된 놀이터
그런데 실제 핀란드의 자치구가 관리하는 놀이터에는 나무 상자 안에 장난감이 비치되어 있어 언제든, 누구든 가지고 놀고 다시 넣어두고 가면 된다고 하네요.함께 놀며 함께 크는게 그런 것일텐데요.
아무쪼록 경계를 허무는 더 좋은 행동 방법이 있다면 함께 공유하고 실현해보도록 해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좋아요] 가 아니라 [행동]입니다. 여러분 각자의 [함께 노는 오늘의행동]을 [오늘 이렇게 했어요]로 공유해주실래요? 오늘은 함께 노는 오늘의행동입니다.
"오늘도 우리 아파트 놀이터는 주변 서민 빌라촌 아이들이 몰려와 마스크도 없이 뛰어놀고 있다. 아이들아 마스크 써"
최근 SNS에 올린 글로 글 하나가 논란이 되었습니다.마스크에 대한 염려야 누구나 공감하는 내용일테지만, '서민 빌라'라는 표현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과거에도 청년주택을 빈민아파트라고 부르거나 공사 소유의 다가구·다세대 반지하 커뮤니티 시설 이름을 ‘기생층’으로 브랜드화 한다는 발표에 모멸감을 불러일으키고 휴거를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 등은 모두 우리사회에서 아파트와 주택이 가지는 사회적 민감성과 더불어 우리가 가진 인식의 한계이기도 했습니다.
휴거’(휴먼시아, 즉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지은 임대주택에서 사는 거지), ‘빌거’(빌라에서 사는 거지), ‘임거’(임대아파트에서 사는 거지) ‘월거지’(월셋집에서 사는 거지), ‘전거지’(전셋집에서 사는 거지), ‘엘사’(LH, 즉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지은 주택에서 사는 사람)… 같은 아파트임에도 임대아파트라는 이유로 같은 브랜드를 써서도 입구를 같이 써서도 안되고 놀이터 이용을 금지하는 어른들.
끔찍한 차별주의적인 표현들이 아이들 입에서 자연스럽게 오르내리고. 아파트 브랜드가 아이들을 구분 짓고 줄 세우고 멸시의 대상이 되는 이상한 나라에서 그 이상함이 성공의 상징이자 경계를 가지는게 대다수의 꿈이 되어버린 이상한 집단 최면에 걸려 있습니다.
어떻게’ 사느냐보다 ‘어디에’ 사느냐가 더 중요해진 시대,
이름이 문제라면 이름을 없앨 수는 없을까요. 아니 경계를 없앨 수는 없을까요?
놀이터와 놀이터의 경계
우리들은 대부분 어릴 적부터 유치원이나 학원엘 갑니다. 남보다 더 잘 되길 바라는 마음도 없지 않겠지만 사회성을 길러야 한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회성은 놀이터에서도 길러집니다. ("성장 과정에서의 학습, 동기부여, 정서, 사회적 기술 등이 놀이의 한 측면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 영국 캠프리지대학교 부설 놀이발달연구소 데이비드 화이트브레드)
교육과 경쟁에 밀려 우리는 노는 것을 남들에게 뒤처지는 것이라 여기지만 놀이는 뇌 발달 뿐 아니라 정서와 인지 발달, 그리고 사회성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놀이터라는 공간에서 다양한 아이들과 논다는 것은 잘 배운다는 말과 일치합니다.
'무장애 놀이터'라는 푯말이 어색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최소한의 것도 보장 받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말, 생각을 넘어 행동하기 위해 표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파트 놀이터 곳곳에 ‘함께 노는 놀이터’, 다른 아파트와 이웃에게 열려있는 놀이터라는 표시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넌 어디 사는 앤"지 절대로 물어보지마시길!.
집 놀이터와 바깥 놀이터의 경계
점점 집으로 놀이기구가 밀려들어옵니다. 황사와 미세먼지 때문이었는데 이제는 감염병 때문에 점점 집이 놀이터가 되고 있습니다. 5세 아이를 키우다보면 아이에게 방방(트램플린)과 침대의 경계란 없습니다. 바깥 놀이가 어려워지는 만큼 집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여건을 마련하고 싶은게 부모 마음입니다.
방방을 좋아하는 우리 아이를 보며 가끔 큰 방방을 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지만 방방을 이고 살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다 생각해봅니다. 큰 방방을 사서 놀이터에 설치해두면 우리 아이는 아이대로 큰 방방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얻어서 좋고 이웃집 아이도 덩달아 즐거워 할텐데 하는 생각. 그런 생각은 모래 놀이에도 미치는데요. 모레 놀이를 하러 갈 때마다 한 가득 이고 지고 내려가서 잠깐 놀다가 주섬 주섬 또 장난감을 챙겨오느니 함께 쓰는 놀이 보관함이 놀이터마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요.(모레 놀이를 해보신 부모님은 공감하실꺼에요;;)
이미지 출처 : 머니투데이 "정부가 지원한 장난감이 비치된 놀이터
그런데 실제 핀란드의 자치구가 관리하는 놀이터에는 나무 상자 안에 장난감이 비치되어 있어 언제든, 누구든 가지고 놀고 다시 넣어두고 가면 된다고 하네요.함께 놀며 함께 크는게 그런 것일텐데요.
아무쪼록 경계를 허무는 더 좋은 행동 방법이 있다면 함께 공유하고 실현해보도록 해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좋아요] 가 아니라 [행동]입니다. 여러분 각자의 [함께 노는 오늘의행동]을 [오늘 이렇게 했어요]로 공유해주실래요? 오늘은 함께 노는 오늘의행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