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진 거리를 치료하는 반창고
브라질의 거리에 커다란 반창고가 붙어있습니다. 깨진 보도블록, 구멍난 하수구 등에 붙여진 반창고는 다친 곳을 치료한다는 연관성과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Urban Dressings이라 불리는 일종의 도시 문제 개입입니다.
망가진 마음을 치유하는 반창고
지난 2016년 서울대의 성소수자 동아리가 걸어놓은 펼침막이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은 찢어진 펼침막을 반창고로 다시 붙여주는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4일 동안 5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참여해 훼손된 자리는 564개의 반창고로 이어붙여졌습니다. 다친 마음을 보듬고 치유해주는 반창고였습니다
이미지출처 : 한겨레신문
그리고 2020년 현수막은 우리에게 다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이 현수막 또한 한 달 동안 7회나 훼손되었다고 합니다. 시민들이 훼손된 자리에 성명서와 응원 문구를 적어 붙였지만 모두 뜯겼습니다.
사진출처 : 경향신문
광고물을 훼손한 20대 남성은 “성소수자들이 싫어서 광고판을 찢었다”고 진술했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틀린’ 사람으로 낙인 찍는 혐오 범죄가 만연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성소수자는 가족구성이나 의료, 주거 등 일상 속 다양한 분야에서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같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존재는 지워지고 있습니다. 법조인도, 정치인도 아니지만 성소수자가 받는 차별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이미지출처 : 블루 스테이트 디지털 for HOPE not hate hate
학교, 일터, 동네 등 내 삶의 터전에 성소수자를 지지하고 차별에 반대하는 포스트-잇을 붙이면 어떨까요?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그들의 존재를 부정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히려 포스트잇으로 우리의 작은 일상의 공간으로 들어가 보는 건 어떨까 제안해봅니다. 훼손당한 현수막의 글귀처럼요. 어쩌면 내가 용기 내서 붙인 포스트-잇이 훼손될 수도, 입에 담기도 험한 답글이 달릴 수도 있지만 작은 메시지를 전달해볼 순 있을 것 같아요. 그것이 결코 특별한게 아닌 그저 우리 삶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또한 누군가에게는 작은 위로와 치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 안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망가진 거리' 를 보수하고 다친 마음을 보듬어 준 반창고처럼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좋아요] 가 아니라 [행동]입니다.
여러분 각자의 [붙여주는 오늘의행동]을 [오늘 이렇게 했어요]로 공유해주실래요? 오늘은 붙여 주는 오늘의행동입니다.
브라질의 거리에 커다란 반창고가 붙어있습니다. 깨진 보도블록, 구멍난 하수구 등에 붙여진 반창고는 다친 곳을 치료한다는 연관성과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Urban Dressings이라 불리는 일종의 도시 문제 개입입니다.
지난 2016년 서울대의 성소수자 동아리가 걸어놓은 펼침막이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은 찢어진 펼침막을 반창고로 다시 붙여주는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4일 동안 5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참여해 훼손된 자리는 564개의 반창고로 이어붙여졌습니다. 다친 마음을 보듬고 치유해주는 반창고였습니다
그리고 2020년 현수막은 우리에게 다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이 현수막 또한 한 달 동안 7회나 훼손되었다고 합니다. 시민들이 훼손된 자리에 성명서와 응원 문구를 적어 붙였지만 모두 뜯겼습니다.
사진출처 : 경향신문
광고물을 훼손한 20대 남성은 “성소수자들이 싫어서 광고판을 찢었다”고 진술했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틀린’ 사람으로 낙인 찍는 혐오 범죄가 만연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성소수자는 가족구성이나 의료, 주거 등 일상 속 다양한 분야에서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같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존재는 지워지고 있습니다. 법조인도, 정치인도 아니지만 성소수자가 받는 차별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학교, 일터, 동네 등 내 삶의 터전에 성소수자를 지지하고 차별에 반대하는 포스트-잇을 붙이면 어떨까요?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그들의 존재를 부정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히려 포스트잇으로 우리의 작은 일상의 공간으로 들어가 보는 건 어떨까 제안해봅니다. 훼손당한 현수막의 글귀처럼요. 어쩌면 내가 용기 내서 붙인 포스트-잇이 훼손될 수도, 입에 담기도 험한 답글이 달릴 수도 있지만 작은 메시지를 전달해볼 순 있을 것 같아요. 그것이 결코 특별한게 아닌 그저 우리 삶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또한 누군가에게는 작은 위로와 치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 안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망가진 거리' 를 보수하고 다친 마음을 보듬어 준 반창고처럼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좋아요] 가 아니라 [행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