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가 또 고장입니다. 올려다 본 계단이 아찔합니다. 문득 짐을 든 어르신을 발견하였습니다. 들어드린다고 하기에 짐은 조금 애매하게 크고, 그렇다고 무심히 지나치기에 분명 들고 계신 손에 힘이 들어가 있는게 느껴집니다. "들어드릴까요?"라는 말이 목까지 차오르고 입 안에 맴돌기를 반복하다 결국 계단 끝에 올라서 있었습니다.
혹시 상대방이 오히려 민망해하면 어쩌지하는 생각은 행동을 주저하게 만듭니다. 그래도 지하철에서는 이런 대가 없는 행동을 자주 목격할 수 있습니다. 유아차를 들어올려주고, 짐을 함께 들어주고 자리를 양보하는 행동을 목격하는 일은 삭막한 일상의 작은 위로입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자주 목격하게 되지만요. 그런데 요즘은 짐을 들어주는 행동을 자주 볼 수 없습니다. 혹시 에스컬레이터가 많아졌기 때문은 아닐까도 생각해봅니다.

그런 에스컬레이터가 고장난 스웨덴에서 재밌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2015년 2월 스톡홀름 지하철에서 대규모 에스컬레이터 고장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고장은 몇 주나 지속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용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WE LOVE HEAVY LIFTING"라고 쓰여진 티셔츠를 맞춰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은 이내 사람들의 여행가방, 유아차 .심지지어 사람들까지 가마를 태워 옮겨주며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했습니다. 물론 한 기업의 후원을 받은 운동선수들이었지만 사람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2018년 시청 지하철 역사에는 '히어로존'이 생겨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습니다. 무거운 짐이 있는 어르신이나 여행가방을 든 여행객, 유아차 등 계단 앞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히어로 존'에 서 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히어로' 되어 돕자는 취지였습니다.
의도는 좋았지만 '히어로'라는 과한 의미부여와 도움을 받는 사람과 도움을 주는 사람을 성별로 구분해 표현한 디자인 등이 논란이 되면서 금새 철거되었습니다. 경사로나 엘리베이터가 있다면 전혀 생기지 않았을 시민들 간의 논란과 갈등만 부추긴 것입니다.

그래도 에스컬레이터는 고장이 날 것이고, 우리는 여전히 짐을 들어드린다고 해야 할지 고민할 것이지만 누군가는 흔쾌히 한 쪽 손을 내밀어 짐의 무게를 나누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여전히 삭막한 도시를 어제와 다른 오늘로 만드는 오늘의행동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꿈꿀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줄 게으른 기부가 필요해요